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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의 전설
◈운암들의 전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오산천에 제방이 없어 장마만 지면 물이 범람하여 농사에 막대한 피해가 있었다. 그러나, 제방을 쌓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고민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길을 지나던 과객이 금암리 어느 진사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과객은 구척장 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더니, 과객이 며칠 동안을 무위도식하며 지내다 하루는 진사에게 신세를 많이 졌으니 도와드릴 일이 없냐고 물어 진사가 오산천 범람에 대해 말하니 과객은 딱한 사정을 듣고는 내가 제방을 쌓아 줄테니 몇 월 며칠 보름날까지 큰 가래를 하나 준비하고 통돼지 일곱 마리와 술 일곱 동이를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진사는 어이가 없었으나 과객의 인물됨이 보통 이상이라 사람을 시켜 수원 광교산에서 큰 물푸레나무를 하나 베고, 수원의 대장간에서 큰 가래 삽을 만들어 소로 끌고 오산으로 왔다. 약속한 날짜에 과객은 하루 종일 낮잠을 자고는 저녁에 일어나 진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부터 일을 시작하니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여 아무도 밖에 나오지 말아달라고 일렀다. 진사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조는 하였으나 너무 궁금하여 마을 주민들과 몰래 숨어서 과객의 하는 짓을 보니 과객은 그 큰 가래를 한 손으로 들고는 오산천에서 일을 하는데 개천의 바닥의 흙과 모래를 떠서는 왼쪽에 쌓고, 또 떠서는 오른쪽에 쌓으니 순식간에 제방이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일을 하더니 통돼지 한 마리에 술 한 동이를 마시고 이런 식으로 제방을 쌓는데 새벽이 되어 동이 틀 무렵에는 오산천의 제방이 다 쌓엿다고 한다. 밤새 숨어서 구경을 하던 진사와 사람들은 피곤하여 새벽에 집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산천의 제방이 완성되어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한편, 과객은 밤새도록 오산천의 제방을 쌓는 일을 마치니 동녘에 붉은 해가 떠올라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진사에게 떠나겠노라 인사를 드리니 진사를 비롯한 주민들이 사례를 하고자 하였으나 사절하고 유유히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까지 이름을 모르던 주민들은 과객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과객이 오산을 떠나 한양을 향해 화성군 동탄면 미륵뎅이를 지나 영천리로 가다가 길 가운데 나무 두 그루가 있어 체격이 크고 몸집이 좋은 과객을 가로막자 돌아가지 않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 놓고는 그 나무에다 [운암벌목(雲岩伐木)]이라 써놓아 주민들이 그때서아 그 과객의 이름이 운암인 줄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그때부터 오산천변의 들을 운암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꽃가마의 전설
오랜 옛날 가마뫼(현 부산동) 마을에 지체 높은 대갓집이 있었는데 주인이 인심이 후덕해서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 대갓집에는 마음씨가 착하고 얼굴이 아름다운 미모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고 여러 가지 약을 썼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대갓집 내외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대갓집 마님이 무봉산 만의사에 찾아가 백일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마님이 백일 기도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현몽하기를 "네 정성이 갸륵하여 이르나니 산 너머 마을 뒷산 중턱에 신비한 샘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가 샘을 마시고 샘물로 몸을 청결하게 씻으면 병이 낫는다"고 하였다. 다음날 꽃가마에 외동딸을 태우고 몸종을 시켜 함께 산을 넘어 옹달샘을 찾아갔다. 그리고 샘물을 마시고 그 물로 몸을 씻으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아가씨가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후 아가시는 몇번 더 옹달샘 물을 마시고 씻으니 몸이 깨끗이 완쾌되었고 그 후로는 인동에서 그 옹달샘이 효능이 있다는 약수로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고 전한다. 대갓집 아가씨가 꽃가마를 타고 그 샘터를 찾았다고 해서 지금도 그 샘터를 꽃가마 약수터라고 부른다.

◈대호밭의 전설
오랜 옛날 군터 건너에는 석산 굴에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출몰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우물이 두 곳 있었는데 우물은 호랑이의 두 눈이고, 묘지가 있는 곳은 호랑이의 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예전에 이마을에 연안 김씨가 많이 모여 살았으며, 그때 진사를 지낸 분이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을 지극정성으로 시묘하였다. 어느 그믐날 밤에 부모의 묘소를 찾아뵙고 돌아오는데 날이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 걷기도 힘이 들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불을 밝혀 줘 무사히 집에 돌아 왔다고 전한다.

◈궁터 부자의 전설
예전에 궁터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사람의 성격이 고약하고 남을 도울 줄 모르고 욕심만 많았다. 하루는 스님이 시주를 왔는데 뒤간에서 인분을 퍼서 주니 스님이 돌아서 가며 말하기를 "집안이 번창하려면 집에서 보이는 필봉산(내삼미동에 있는산)이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라고 혼잣말로 하고 가니 욕심 많은 부자는 흙담을 높이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흙담을 아무리 높이 쌓은들 앞에 있는 산이 보이지 않을 리가 있는가. 결국 그짓을 계속하니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패가가 되었다고 전한다.

◈내삼미의 전설
어느 날 정조대왕은 원삼(源三)에 대령하고 있는 수원 유수(留水)를 불러, 이곳 고을의 이름을 물으시니, [문시백 송산림]이라고 아뢰니, 대왕께서 문(文)에는 필(筆)이 있는 법이니 필봉(筆峰)이라 고쳐라 하시었다. 그 후에 또다시 대왕께서 능행차를 하실 때에 다시 수원 유수에게 고을 이름을 물으시니 문시백 필봉동이라 아뢰니 왕께서 이곳 사면 주위를 관망하시고는 "송산골은 금로대송(錦老大松)이 울창하여 아름답고, 점이골(현재의 죽미령)은 대나무골과 대량골에 대나무가 아름다우며, 문시와 오미의 오동나무가 아름답구나. 이제 이곳을 삼미(三美)라 칭하라" 하시어 삼미가 되었다고 한다.

◈아기 업은 바위의 전설
서동의 신동아 아파트가 있는 뒤쪽 산에 아기 업은 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생김새가 어미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가 개벽을 할 때 서촌(현 서동)에 의좋고 서로 사랑하는 두 부부가 어린애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생활이 구차하여 내외는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살람이 피지를 못했다. 하루는 남편이 먼 곳으로 일을 하러 떠나게 되어 부인은 산마루까지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일을 떠난 남편은 여러 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부인은 매일 아기를 업고 산마루에 올라가 남편이 길 떠난 쪽을 바라보며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소식은 끝내 없었고 아내는 아기를 업은 채 죽어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장자못의 전설
아득한 옛날 외삼미동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 부짓집 앞에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 명주실이 한 타래나 들어가는 깊이였다고 한다. 어느해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나니 이 부자는 재산이 아까워 안절부절 못하였으나 할 수 없이 피난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는 금은보화 패물을 그 연못에 숨기고는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그 이후에 청명한 날이면 연못에서 보석들의 서기로 빛이 났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연못은 부자의 연못, 장자못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외삼미동에 방곡(뱅골)에는 연못이 있으나 지금은 양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