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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세마대지]
기념 : 사적 제140호
위치 : 오산시 세마대길 94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55번지 일대)
교통 : 서울남부터미널(50분) / 시내 오산역앞(20분)
주변볼거리 : UN기념비, 지석묘군, 궐리사, 서랑저수지
독산성은 백제가 축성한 고성으로 연장 1,100m이며 백제시대와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이용된 성이다. 임진왜란을 맞은 1592년 , 권율장군이 근왕병 1만여 명을 이끌고 북상하는 도중 이성에
주둔하여 수만의 왜병을 무찌르고 성을 지켰던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물이 부족한 이 곳의 조건을 알고 왜병이 물을 한 지게 올려 보내 조롱하자, 권율장군이 백마를
산상에 세우고 말에 쌀을 끼얹어 말을 물로 씻는 시늉을 해 보이자 왜군은 성내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 퇴각하였다는 세마대의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세마대는 독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독산성 축성 후 전승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보적사가
성내에 자리하고 있다.
[궐리사]
기념 : 도기념물 제147호
위치 : 오산시 매홀길 3 (경기도 오산시 궐동 147)
교통 : 수원버스 - 301, 302-1, 20, 300, 3번
주변볼거리 : UN초전비, 독산성세마대지, 지석묘군 등
오산의 궐리사는 노성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제 2대 궐리사중 하나로서 1792년
정조(16)에 창건되어 어서사액 되었으며 대성 공자를 봉안하고 있다.

이곳은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중종때 승지.경기감사.대사헌등 역임)선생이 낙향하여 강당을 세우고 강당앞에 손수 은행나무를 한그루 심은 후 북을 걸고 두드려 제자들의 학업을 독려하며, 여생을 보내던 곳입니다. 선생이 별세후 자연 폐허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정조때에 이르러 여러차례 강당이 재건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81년에 다시 지어졌다.

궐리사 배치는 본 건물에는 공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사당 전면 좌측에 성적도를 봉안한 장각이 있고 사당과 담장밖으로 단낮은 곳에 재실이 있었는데 궐리사 경재는 1996년 도.시비 지원으로 건립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전시관과 강당으로 새롭게 정비되고 매년 동하기에 예조에서 관상감에게 3월과 9월 상순으로 택일하여 어제 축문과 봉향을 하사받아 춘추로 석전을 봉행하고 있다.

[궐리사성적도]
기념 : 도 유형문화재 제62호
위치 : 오산시 매홀길 3 (경기도 오산시 궐동 152)
교통 : 수원버스 - 301, 302-1, 20, 300, 3번
주변볼거리 : UN초전비, 독산성세마대지, 지석묘군 등
1901년 (광무5)강당 6칸을 신축하고 공자님의 76대손인 공재헌이 중국에 건너가 “여성부”가 손수 조각한 진품 성적도를 들여와 다시 판각으로 조각하였고, 이 성적도는 판각이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었으며 , 이후부터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다소나마 당국의 지원이 계속돼 퇴락한 옛 강당을 철거하고 와즙 8칸의 강당과 성적도 판각을 보관할 수 있는 장각을 신축하고, 주위환경을 정비함으로써 궐리사 면모가 일신되었다.

사당 좌측에는 1904년(광무8)에 도약장 조병식외 7인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본 따 제작한 60매의 성적도가 보관되어 있다. 피나무로 된 이 목판은 양단에 나무를 깎아 목판의 균형을 유지하게 하였으며, 문의 자경은 1cm 정도로 글씨는 정교하지 못하나 판장에 조각된 공자의 성적도는 비교적 섬세한 편이다.

[금암동 지석묘군]
기념 : 도 기념물 112호
위치 : 경기도 오산시 금암동 산 53
교통 : 서울남부터미널 → 오산역(20분)
주변볼거리 : UN초전비, 궐리사
금암동은 예부터 잘생긴 바위가 많아 금바위 마을로 불려왔다. 지석묘군은 1988년 화성문화원과 한양대 최호림 박사팀에 의해 조사 보고된 것으로 금암동 일대의 지석묘 9기가 기념물로 지정됐다.

금암동의 지석묘군은 종래 1기식이 아닌 지석묘군으로서는 한수 이남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으로 청동기 시대의 거주집단 규모, 거주지역 풍속도 등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문화사적 가치가 지대한 지석묘군이다.

지석묘군은 금암동 일대의 구릉지와 논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석의 크기는 장축 190~600cm에 이르며 대체로 타원형이다. 석질은 화강암이며, 장축의 방향은 남북방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제 2호 지석묘는 논뚝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석묘의 상석엔 3개의 성혈이 있다. 크기는 직경과 깊이가 각각 3~5cm이다. 성혈을 만드는 풍습은 전 세계적으로 거석문화가 함께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고 아들 낳기를 비는 마음에서 만든 것이라 유래되고 있다.

[외삼미동 지석묘]
기념 : 시 향토유적 제1호
위치 : 경기도 오산시 외삼미동 384
교통 : 서울 남부터미널 → 오산역(20분소요)
주변볼거리 : UN초전비, 독산성세마대지, 서랑저수지
외삼미동의 지석묘는 숲으로 둘러싸인 구릉에 위치한 2기의 고인돌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시민의 요구에 의하여 한양대 박물관장겸 경기도 문화재 위원인 김병모 교수가 현지 확인결과 청동기 시대 후기에 속하는 유적으로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되어 있는 희귀한 예로서, 선사시대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보적사]
기념 : 전통사찰 제34호
위치 : 오산시 세마대길 94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50)
교통 : 서울 남부터미널 → 오산역(25분)
주변볼거리 : UN초전비, 서랑저수지
고려초 창건 당시 세계 중생의 질병치료, 수명연장, 재화소멸, 의복, 음식등을 만족케 하고, 부처의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진리를 터득케 한다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중심으로 독산성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했다.

대웅전 좌두에는 요사채 2동이 있으며 대웅전 정면에 3층 석탑이 조성되어 전통사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조선후기의 사찰, 호국의 군진으로 이름난 사적 제140호 독산성 세마대지와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보적사는 아무런 사적 자료없이 고려초기 창건으로만 전해올 뿐이다.

수원유수가 관할하는 3백여호의 변화한 촌락이 되었으나 한일 합방후 왜인은 세마대를 파괴하고 주민을 각처로 분산 이주케 하였다. 여러차례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하다 조선 22대 정조가 용주사 건립시 재건하였고, 1957년 세마대의 복원과 함께 산상에 연무의 3개 광장도 마련하였다.